전극은 활물질 가루를 금속박 위에 ‘붙여서’ 만든다. 그 접착제인 바인더(binder)가 음극에서는 물에 녹는 CMC/SBR로, 양극에서는 유기용매 NMP에 녹인 PVDF로 갈라져 있는 이유를 화학과 특허의 두 관점에서 정리한다.
① 무엇이 화제인가
바인더 선택은 ‘얼마나 잘 붙는가’보다 ‘어떤 용매를 쓰고 어떤 전위를 견디는가’로 먼저 결정된다. 그리고 양극을 물로 바꾸는 일의 병목은 바인더가 아니라, 물과 반응하는 양극 활물질 표면과 알루미늄 집전체 쪽에 있다.
업계 상황부터 보자.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은 이미 물을 용매로 쓰는 수계(aqueous) 공정이 표준이다. 흑연·실리콘계 음극에서는 카복시메틸셀룰로스 나트륨염(Na-CMC, sodium carboxymethyl cellulose)과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BR, styrene-butadiene rubber)를 섞어 쓰는 조합이 표준 바인더로 자리 잡았다[2]. 반면 양극 슬러리는 N-메틸-2-피롤리돈(NMP, N-methyl-2-pyrrolidone)을 용매로, 폴리불화비닐리덴(PVDF, polyvinylidene fluoride)을 바인더로 쓰는 방식이 여전히 널리 쓰인다[1].
긴장 요인은 규제와 비용이다. NMP는 생식독성 우려 물질로, EU에서는 NMP를 0.3% 이상 함유한 혼합물에 대해 작업자 노출 한도를 지키는 조건에서만 시장 출시·사용을 허용하는 제한이 2020년 5월부터 적용되고 있다[3]. 흡입 기준 14.4 mg/m³, 경피 기준 4.8 mg/kg/day라는 노출 기준도 함께 제시돼 있다[2][3]. 여기에 NMP 회수 설비와 에너지 집약적인 건조 공정이 제조원가를 끌어올린다는 지적이 있고[1], PVDF는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 논의의 대상이기도 하다[2]. 그런데도 대체 조성은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아직 기존 NMP/PVDF와 경쟁할 수준에 이르지 못해 업계 전반에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 2024년 리뷰의 평가다[1].
그래서 이 글이 답하려는 질문은 이것이다. 같은 셀 안에서 음극은 물, 양극은 NMP를 쓰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경계선에서 특허는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있는가.
② 기본 원리 — 바인더는 ‘모래성에 뿌리는 풀물’이다
전극 합제층은 활물질 입자, 도전재, 바인더로 이뤄진다. 바닷가 모래성에 비유하면 활물질은 모래알, 바인더는 모래알 사이에 스며들어 굳는 풀물이다. 풀물은 모래알끼리(응집력)와 모래성과 바닥판(집전체) 사이(접착력)를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모래알 사이의 틈, 즉 전해액이 드나들 기공을 막아서는 안 된다.

자료: Rolandi 외(2024) 리뷰의 수계 공정 설명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수계 음극의 CMC/SBR은 이 역할을 둘로 나눠 맡는다. CMC는 물에 녹아 슬러리를 걸쭉하게 만드는 증점제(thickener) 역할과 입자를 고르게 흩어 놓는 분산 역할을 하고, SBR은 전극에 유연성과 접착 강도를 더한다[2]. 풀물로 치면 CMC가 ‘농도 조절제’, SBR이 ‘고무 성분 접착제’인 셈이다. 반면 양극의 PVDF는 NMP에 녹은 상태로 입자를 감싼 뒤, 용매가 증발하면서 결착점을 남기는 단일 바인더 방식이다.
왜 양극은 물을 못 쓰는가. 핵심은 물이 풀물만이 아니라 모래알 자체와도 반응한다는 데 있다. 층상 산화물 양극(NMC)을 물에 넣으면 입자 표면의 리튬 이온과 물의 수소 이온(proton)이 자리를 맞바꾸는 교환 반응이 일어나고, 그 부산물로 수산화리튬(LiOH)과 탄산리튬(Li2CO3)이 생긴다[2]. 그 결과 슬러리가 알칼리성으로 기운다. 알루미늄 집전체의 얇은 산화알루미늄 보호막은 대략 pH 4.5~8.5 범위에서 안정한데, 슬러리 pH가 9를 넘어가면 이 보호막이 녹으면서 알루미늄 집전체가 부식된다[2]. 즉 양극의 수계 전환은 ‘물에 녹는 좋은 풀’을 찾는 문제이기 전에, 물에 닿아도 상하지 않는 모래알과 바닥판을 만드는 문제다.
③ 비교 — 수계 CMC/SBR과 유기계 PVDF/NMP
| 비교 항목 | 수계: CMC/SBR + 물 | 유기계: PVDF + NMP |
|---|---|---|
| 주 사용처 | 흑연·실리콘계 음극의 표준 바인더 조합[2] | 양극 슬러리의 표준 용매·바인더 조합[1] |
| 바인더의 역할 분담 | CMC: 증점·입자 분산 / SBR: 유연성·접착 강도[2] | PVDF 단일 바인더가 결착을 담당[1] |
| 제조 에너지 | NMP 전극 대비 제조 에너지가 한 자릿수(약 10분의 1) 수준으로 적다는 보고[2] | NMP 회수 설비와 에너지 집약적 건조가 원가 요인[1] |
| 규제 노출 | 용매(물) 자체의 규제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음(정성 비교) | EU: NMP 0.3% 이상 함유 시 노출 한도 준수 조건, 흡입 14.4 mg/m³·경피 4.8 mg/kg/day[2][3] / PVDF는 PFAS 규제 논의 대상[2] |
| 양극에 적용할 때의 난제 | Li+/H+ 교환 → LiOH·Li2CO3 생성, pH 9 초과 시 Al 보호막 용해(안정 범위 pH 4.5~8.5)[2] | 현행 양산 표준으로, 대체 조성이 가격·성능 면에서 아직 경쟁 열위라는 평가[1] |
자료: Mun 외(2024)[1], Rolandi 외(2024)[2], NMP 제한 관련 보도(2020)[3]를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이 표가 말하는 것: 수계 공정은 제조 에너지가 약 10분의 1 수준이라는 뚜렷한 장점이 있지만[2], 양극에서는 pH 9라는 하나의 문턱이 알루미늄 부식과 활물질 열화를 동시에 부른다[2]. 음극과 양극의 갈림길은 바인더 성능이 아니라 이 문턱에서 생긴다.
④ 특허 관점 — ‘범용 소재’의 권리는 등급과 측정법에 숨어 있다
CMC는 식품·화장품에도 쓰이는 범용 셀룰로스 유도체다. 그렇다면 배터리용 CMC에는 권리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범용 소재일수록 권리는 ‘물질’이 아니라 ‘어떤 등급이어야 하는가’를 수치와 측정법으로 정의한 파라미터 청구항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제지(Nippon Paper Industries)의 US9240583B2다. 우선일 2008-11-26, 출원일 2009-11-26, 등록일 2016-01-19, 현 권리자 일본제지, 법적 상태는 Active(조정 존속기간 만료 예정 2031-07-21), 등록 청구항은 2개다[4]. 명세서가 겨냥한 문제는 CMC를 물에 녹여 슬러리를 만들 때 녹지 않은 CMC 덩어리가 남아, 코팅면에 줄무늬(streak)와 핀홀(pinhole) 결함을 만든다는 점이다[4]. 청구항 1을 구성요소 단위로 재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 청구항 1의 구성요소(재서술) | 권리 범위상의 의미 |
|---|---|
| (a) 카복시메틸셀룰로스 또는 그 염일 것 | 물질 자체는 범용 — 이 요소만으로는 권리 범위가 성립하기 어렵다 |
| (b) 0.3 질량% 수용액 2리터를 250메시 필터로 감압(−200 mmHg) 여과했을 때, 필터 위 잔사의 건조 질량이 투입 CMC 건조 질량 대비 50 ppm 미만일 것 | ‘미용해 잔사’를 특정 시험법으로 수치화한 한정 — 침해 판단의 기준선 |
| (c) 메탄올 분산매 레이저 회절법으로 측정한 체적 누적 100% 입자경이 31 μm 이상 50 μm 미만일 것 | 분말 입도 한정 — 용해 속도와 연결되는 조건 |
| (d) 무수 글루코스 단위당 카복시메틸 치환도가 0.45 이상 2.0 이하일 것 | 분자 구조 범위 한정 — 비교적 넓은 범위 |
| (e) 1 질량% 수용액의 25°C B형 점도가 1,000~20,000 mPa·s일 것 | 점도 등급 한정 |
| (f) 비수전해질 이차전지 전극의 바인더로 기능하도록 된 것일 것 | 용도 한정 — 배터리 전극 바인더 용도로 범위를 좁힘 |
자료: Google Patents US9240583B2 서지사항 및 청구항 구성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원 청구항 문언·도면을 그대로 전재하지 않음).
여기서 권리 범위의 축은 (b)다. 치환도나 점도처럼 카탈로그에 흔히 적히는 값은 범위가 넓어 많은 제품이 걸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침해 소지를 다툴 때는 “그 시험법으로 쟀을 때 50 ppm 미만인가”가 먼저 검증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구성요소를 동시에 충족해야 침해가 성립하는 구성요소 완비 원칙(All Elements Rule)을 고려하면, 회피 설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로 그려볼 수 있다. ⓐ 입도를 50 μm 이상으로 두고 용해 공정을 별도로 관리하는 경로, ⓑ 점도 등급을 청구 범위 밖으로 설정하는 경로, ⓒ CMC 대신 다른 수용성 고분자를 증점제로 쓰는 경로다.
다만 반론도 분명하다. ⓐ·ⓑ는 슬러리 물성과 코팅 품질을 희생할 수 있어 기술적으로 ‘회피 비용’이 크고, 수치 경계 근처의 제품은 측정 조건 차이만으로 판단이 갈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특허는 소재 공급사의 권리이므로, 셀 제조사 입장에서는 직접 회피보다 공급 계약상의 보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편이 현실적일 수 있다. 유사 특허 크로스체크로는 제온(Zeon)의 US11552297B2(우선일 2014-06-04, 등록 2023-01-10, Active)가 있다. 이 특허는 CMC가 아닌, (메트)아크릴산과 (메트)아크릴아마이드를 주성분으로 한 공중합체 바인더를 전해액 팽윤도 120 질량% 미만이라는 조건으로 청구하고 있어[5], 수계 바인더의 권리가 ‘조성+물성 파라미터’ 조합으로 설계된다는 흐름을 함께 보여준다.
⑤ 한계와 전망
낙관적으로 보면, 규제와 원가 압력이 겹치면서 양극에서도 수계 또는 비NMP 공정으로의 전환 압력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수계 전극의 제조 에너지가 NMP 전극보다 한 자릿수 적다는 보고[2]는 그 자체로 강한 유인이다.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니켈 함량이 높은 양극일수록 표면 리튬이 물과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에너지 밀도 경쟁이 곧 수계 전환의 난도를 높이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 대체 조성이 아직 가격·성능 면에서 기존 NMP/PVDF와 경쟁하지 못한다는 평가[1]를 더하면, 양극 수계화는 ‘규제가 강제하는 속도’보다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략적 대안을 하나 제시하면, 바인더를 ‘소재 교체’가 아니라 ‘공정 조건 패키지’로 관리하는 것이다. pH 제어 첨가제, 집전체 표면 처리, 바인더 등급을 하나의 조합으로 묶어 개발하고, 그 조합 단위로 선행기술과 권리 범위를 점검해야 부분 교체로 인한 예상 밖의 침해 소지나 성능 저하를 줄일 수 있다.
확인할 액션(기획·IP 담당자): 현재 쓰는 CMC·SBR·PVDF 공급사의 규격서(치환도, 점도, 입도, 미용해분 시험법)를 모아, 각 수치가 공급사 또는 경쟁 소재사의 파라미터 청구항 범위와 겹치는지 표로 대조해 볼 것. 공급 계약서에 특허 보증(indemnity) 조항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확인이 필요한 항목
- US9240583B2의 일본·한국·중국 패밀리 구성과 각국 등록·존속 여부는 이 글에서 별도로 확인하지 않았다.
- 양극 수계 공정의 실제 양산 적용 사례(셀 제조사·적용 제품)는 이번 조사에서 공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 PVDF에 대한 EU PFAS 제한의 최종 적용 범위·일정은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확정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출처
- Sung Cik Mun, Yeong Hoon Jeon, Jong Ho Won, 「Progress and challenges for replacing n-methyl-2-pyrrolidone / polyvinylidene fluoride slurry formulations in lithium-ion battery cathodes」, Progress in Natural Science: Materials International 34(1), 194–206, 2024. 링크
- Rolandi 외, 「Unlocking sustainable power: advances in aqueous processing and water-soluble binders for NMC cathodes in high-voltage Li-ion batteries」, RSC Sustainability 2, 2024. 링크
- European Coatings, 「NMP restriction to take effect soon」, 2020-01-27. 링크
- Google Patents, US9240583B2 「Carboxymethylcellulose or salt thereof for electrodes of nonaqueous electrolyte secondary battery and aqueous solution thereof」 서지사항·명세서·청구항 1(2026-09-23 원문 확인). 링크
- Google Patents, US11552297B2 「Binder composition for lithium ion secondary battery electrode-use …」 서지사항·청구항 1(2026-09-23 원문 확인). 링크
이 글은 기술·특허 동향 해설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FTO 판단은 전문가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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