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화제인가: ‘무엇을 섞느냐’에서 ‘어떻게 섞느냐’로
슬러리를 얼마나 균일하게 분산하느냐는 전극 품질을 좌우하는 공정 변수이고, 3,500bar 초고압 분산은 그 압력 상한을 끌어올리겠다는 시도다. 다만 2026년 8월 현재 이 압력이 셀 성능을 얼마나 바꾸는지 보여 주는 정량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글은 K-BATTERY SHOW 2026 공식 블로그가 소개한 국내 장비사 마이크로녹스의 ‘세계 최초 3,500bar 초고압 분산 기술’을 계기로, 분산압과 셀 성능의 관계를 공개 연구와 특허 문헌으로 정리한다.
업계 상황부터 보면, 배터리 소재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재 성능 못지않게 ‘균일하게 섞는’ 공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같은 양극재와 도전재를 써도 슬러리(slurry, 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용매에 섞은 걸쭉한 반죽) 안에서 입자가 뭉쳐 있으면 전극 곳곳에 성능 편차가 생긴다. 소재 조성이 비슷해질수록 공정이 차별화 수단이 되는 흐름이다.
긴장 요인은 ‘압력이 높을수록 좋다’는 직관을 데이터가 아직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개 연구에서는 고압 분산이 입도와 점도를 크게 바꿔도 전기화학 성능 차이는 조건에 따라 제한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글이 답할 질문은 세 가지다. 분산압은 어떤 경로로 셀 성능에 닿는가, 기존 고압 분산과 3,500bar는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이 분야의 권리는 장비와 조성 중 어디에 모여 있는가이다.
기본 원리: 덩어리를 깨는 힘과 다시 뭉치려는 힘
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용매에 섞는 슬러리 믹싱 단계에서 분산압이 낮으면 입자가 뭉쳐(응집) 국부적으로 저항이 높은 영역이 생긴다. 고압 분산은 슬러리를 미세한 노즐로 밀어 넣어, 이때 생기는 강한 전단력과 충돌 에너지로 응집체를 물리적으로 깨뜨리고 입도 분포를 균일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자료: Jalowy et al., AppliedChem 5(4), 33(2025)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비유하자면 덩어리진 소금을 절구에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압력이 셀수록 더 잘게, 더 균일하게 갈린다. 다만 절구질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너무 세게 빻으면 소금 결정 자체가 깨져 원하지 않는 미분이 생길 수 있고, 빻은 가루를 그대로 두면 습기를 먹고 다시 뭉친다. 슬러리도 같다. 과도한 에너지는 활물질 입자나 도전재 구조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고, 분산 직후의 균일함을 유지하는 것은 압력이 아니라 분산제·바인더 설계의 몫이다.
분산 상태가 셀 성능에 닿는 경로는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 전자 경로: 도전재가 고르게 퍼져야 활물질 입자마다 전자가 드나들 길이 생긴다. 뭉친 도전재는 일부 입자를 고립시킨다.
- 코팅 품질: 슬러리 점도와 입도가 균일해야 코팅 두께가 일정하고, 건조 중 결함이 줄어든다.
- 공정 경제성: 점도가 낮아지면 같은 흐름성에서 고형분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건조해야 할 용매량 감소로 이어진다.
세 번째 경로는 흔히 간과되지만 실제 공개 연구에서 가장 뚜렷하게 수치로 드러난 효과다. 이 점은 아래 비교에서 다시 확인한다.
비교: 기존 분산, 2,200bar 고압 분산, 3,500bar 초고압 분산
독일 프라운호퍼 IPA 연구진은 2025년 11월 5일 학술지 AppliedChem에 수계 LFP(리튬인산철) 양극 슬러리를 두 방식으로 분산한 비교 결과를 발표했다. 하나는 고속 회전 톱니 디스크로 섞는 디졸버(dissolver) 방식, 다른 하나는 슬러리를 마이크로 노즐로 최대 2,200bar까지 밀어 넣는 습식 제트 밀링(wet jet milling) 방식이다. 아래 표는 원문의 비교표에 이 공개 연구의 수치를 더한 것이다.
| 구분 | 디졸버 분산(Paste A) | 습식 제트 밀링(Paste B) | 마이크로녹스 초고압 분산 |
|---|---|---|---|
| 분산압 | 기계식 교반(6,000rpm) | 2,200bar | 3,500bar(발표) |
| 고형분(wt%) | 37.1 | 41.1 | 미공개 |
| 입도 중앙값 D50(µm) | 7.91 | 4.78 | 미공개 |
| 분산+건조 에너지(kWh/kg) | 1.70 | 0.98(42.4% 절감) | 미공개 |
| 방전 용량 0.1C(mAh/g) | 약 111 | 약 111 | 미공개 |
| 방전 용량 1.0C(mAh/g) | 73.1±12.3 | 83.8±3.0 | 미공개 |
자료: Jalowy et al., AppliedChem 5(4), 33(2025), K-BATTERY SHOW 2026 공식 블로그 소개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부 정리
이 표가 말하는 것: 2,200bar 고압 분산은 입도 중앙값을 39% 줄이고 분산·건조 에너지를 42.4% 줄였지만, 저율(0.1C) 용량은 두 방식이 같았고 차이는 1.0C 같은 고율 구간과 편차 축소에서 나타났다. 3,500bar 방식은 이 항목들 가운데 공개된 수치가 아직 없다.
이 비교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압력 → 입도 → 용량’이라는 단선적 연결이 아니다. 연구진이 보고한 에너지 절감의 상당 부분은 분산 시간 단축과 높은 고형분에서 나왔고, 전기화학 성능 차이는 제한적이라고 결론지었다. 또 이 연구는 도전재(카본블랙) 투입 전 중간 반죽을 따로 분석해 LFP 입자 자체의 거동을 본 것이므로, 도전재 응집에 대한 결론으로 확대해 읽을 수는 없다.
통찰: 초고압 분산의 1차 가치는 ‘성능’보다 ‘편차와 공정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위 연구에서 1.0C 용량의 평균 차이만큼 눈에 띄는 것은 표준편차가 ±12.3에서 ±3.0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양산 관점에서 셀 간 편차 축소는 선별 불량률과 팩 설계 여유분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3,500bar 기술을 평가할 때도 ‘에너지밀도가 몇 % 오르느냐’보다 ‘편차와 kWh/kg당 공정 에너지가 얼마나 줄어드느냐’를 먼저 묻는 편이 현실적이다.
특허 관점: 압력 수치보다 노즐 구조와 분산 조성에 권리가 모인다
원문 시점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녹스의 3,500bar 기술과 직접 연결되는 출원 특허는 공개된 특허 정보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 이 분야의 권리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두 건을 Google Patents에서 확인했다.
① 선행기술 기준점: KR100685540B1(DSM IP Assets B.V.). 발명의 명칭은 ‘액체를 혼합 또는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우선일 1998년 12월 7일, 출원일 1999년 12월 6일, 등록일 2007년 2월 22일이며 현재 상태는 Expired(연차료 미납, 예상 만료일 2019년 12월 6일)다. 청구항 1을 재서술하면, 20~250°C, 50~2,500bar 조건에서 구멍 지름 0.05~1mm의 유입 노즐, 길이/지름 비 0.5~50의 난류 챔버, 유입 노즐보다 작은 유출 노즐을 축 방향으로 정렬한 혼합 장치를 쓰고, 체류 시간을 10⁻⁶~10⁻¹초로 하는 방법이다.
자료: KR100685540B1 청구항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이 특허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노즐로 액체를 밀어 넣어 고압으로 분산한다’는 기본 개념은 1990년대 말 이미 청구항 수준으로 공개돼 있고 권리는 소멸했다. 둘째, 청구된 압력 상한이 2,500bar였다는 점에서, 3,500bar라는 수치는 이 선행 범위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다만 압력 수치만 높인 것은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도출할 수 있는 범위 확장으로 판단돼 진보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새 출원이 권리를 확보하려면 고압에서의 노즐 마모·압력 맥동 억제 같은 구조적 해결 수단을 청구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② 배터리 분산 조성 특허: US20220166027A1(LG Energy Solution). 명칭은 ‘탄소나노튜브 분산액과 이를 포함하는 음극 슬러리, 음극 및 리튬 이차전지’로, 우선일 2019년 8월 21일, 출원일 2020년 8월 21일, 공개일 2022년 5월 26일이며 Google Patents 기준 상태는 Pending이다. 청구항 1은 BET 비표면적 800m²/g 이상의 탄소나노튜브, 아민기를 가진 고분자와 방향족 고리가 여러 개인 페놀계 화합물을 조합한 분산제, 수계 용매로 이루어진 분산액을 청구한다. 고압 균질기(high pressure homogenizer)는 명세서에 밀링 수단의 예시로만 등장하고 압력 수치는 한정되지 않는다.
이 구조는 FTO(침해 여부 검토) 관점에서 중요한 신호다. 배터리 업체의 분산 관련 권리는 ‘어떤 장비로 몇 bar에서’가 아니라 ‘어떤 분산제와 도전재를 어떤 조성으로’에 모이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초고압 장비를 도입해도 분산 조성이 기존 특허의 권리 범위에 들어가면 침해 소지는 그대로 남고, 반대로 장비 자체는 조성 특허의 구성요소가 아니다.
회피 포인트: 장비사 입장에서는 소멸된 DSM 특허의 청구 범위(50~2,500bar, 축 정렬 노즐)를 공지 기술로 활용하고, 차별점은 노즐 형상·세척 구조·맥동 제어처럼 구조 요소로 설계하는 것이 권리 확보에 유리하다. 셀 제조사 입장에서는 장비 변경과 별개로 분산제·도전재 조성을 기존 조성 특허와 1:1로 대조해야 한다.
회피설계 시나리오(반론): 초고압 분산으로 분산제 사용량을 줄이거나 다른 분산제를 쓸 수 있다면 조성 특허의 구성요소(특정 분산제 조합)를 결여해 권리 범위 밖에 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특허권자는 고압 처리로 얻은 분산 상태가 실질적으로 같은 기능을 같은 방식으로 달성한다며 균등 침해를 주장할 여지가 있고, 초고압 장비사가 공정 조건을 청구한 특허를 새로 확보하면 셀 제조사는 오히려 장비 조건 쪽에서 새로운 FTO 검토 대상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한계와 전망
기술의 방향성, 즉 균일 분산도 향상은 업계 흐름과 일치한다. 공개 연구도 고압 분산이 입도·점도·공정 에너지를 뚜렷하게 바꾼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3,500bar 방식은 실제 양산 적용 사례와 성능 비교 데이터가 공개되기 전까지 효과를 단정하기 어렵다.
낙관적 전망은 초고압 분산이 도전재·고함량 실리콘처럼 뭉치기 쉬운 소재의 분산 한계를 넓혀 고형분 상승과 건조 에너지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압력을 높일수록 입자 파쇄와 도전재 구조 손상, 노즐 마모와 유지보수 부담이 커져, 2,000bar대 장비나 기존 믹서 대비 추가 이득이 투자비를 정당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에서도 전기화학 성능 차이는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대안은 압력 수치 경쟁 대신 ‘분산 조성 + 공정 조건’을 묶은 평가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조성으로 압력·패스 수만 바꾼 비교 데이터를 확보하면, 장비 선택과 조성 특허 FTO를 한 번에 판단할 수 있고 자체 공정 노하우를 영업비밀이나 방법 특허로 가져갈지 결정하는 근거도 된다.
실무 액션: 초고압 분산 장비 도입을 검토하는 기획·IP 담당자는 장비사에 동일 조성 기준의 입도(D50)·점도·고형분·kWh/kg 비교 데이터를 요청하고, 동시에 자사 분산제·도전재 조성을 US20220166027A1 같은 분산 조성 특허 패밀리와 구성요소 대비표로 점검해 두는 것이 좋다.
확인이 필요한 항목
- ‘세계 최초 3,500bar’라는 표현의 비교 기준과 장비의 연속 운전 압력(최대 압력인지 운전 압력인지)
- 3,500bar 분산 적용 시 입도·점도·수명 등 정량 데이터와 적용 소재(양극·음극·도전재)
- 마이크로녹스 명의의 초고압 분산 장비·노즐 관련 국내외 출원·등록 특허 현황(KIPRIS 조회 필요)
- 원문 비교표의 ‘기존 습식 분산 1,000~2,000bar대’는 편집부 추정치이며, 장비별 실제 운전 압력 분포
- US20220166027A1의 등록 여부와 한국·유럽 패밀리의 권리 상태
출처
- K-BATTERY SHOW 2026 공식 블로그, 마이크로녹스 3,500bar 초고압 분산 기술 소개(원문 출처)
- 에이빙(AVING), [미리보는 COPHEX 2011] 마이크로녹스, 초고압 나노 분산·유화 장비 ‘피코맥스’ 소개(2011-05-20)
- Jalowy L. et al., Processing Water-Based Lithium Iron Phosphate (LiFePO4) Cathodes with CMC Binder: The Impact of Dispersing Methods, AppliedChem 5(4), 33 (2025-11-05)
- Google Patents, KR100685540B1 – 액체를 혼합 또는 분산시키는 방법(DSM IP Assets B.V.)
- Google Patents, US20220166027A1 – Carbon Nanotube Dispersion, and Negative Electrode Slurry, Negative Electrode, and Lithium Secondary Battery Including the Same(LG Energy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