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 없이 갈 수 있는가 — 리튬메탈과 하드카본의 이원화 전략

무엇이 화제인가: 흑연을 떠나는 두 갈래 길

흑연 음극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하나의 대체재로 모이지 않고, 프리미엄 쪽의 리튬메탈과 보급형 쪽의 하드카본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두 소재는 흑연을 없애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리튬메탈은 리튬을 받아 줄 ‘집(호스트)’을 아예 없애는 쪽이고, 하드카본은 탄소는 유지하되 흑연이 아닌 무질서한 탄소로 바꾸면서 전지 화학까지 나트륨이온으로 옮기는 쪽이다.

업계 상황을 보면 흑연은 음극재 시장의 90%를 웃도는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공급망 규제가 겹쳤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는 2023년 10월 20일 공고를 내고, 2023년 12월 1일부터 고순도·고강도·고밀도 인조흑연 소재와 구상화 흑연·팽창 흑연을 포함한 천연 인상(鱗狀)흑연 제품을 수출 허가 대상으로 묶었다. 구상화 흑연은 음극재의 전 단계 소재라는 점에서 배터리 업계에 직접 닿는 조치였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 CRMA(핵심원자재법) 같은 역내 공급망 규제도 탈흑연 논의를 밀어 올리고 있다.

긴장 요인은 ‘대체재가 준비됐는가’에 있다. 리튬메탈은 용량은 압도적이지만 안전성 과제가 남아 있고, 하드카본은 국내에서도 양산 설비가 이제 막 들어서는 단계다. 이 글이 답할 질문은 세 가지다. 두 후보는 원리상 흑연과 무엇이 다른가, 어디까지 왔는가, 그리고 특허 측면에서 어떤 권리 구조를 살펴야 하는가이다.

기본 원리: 책장, 맨바닥, 스펀지

흑연은 탄소 원자가 판 모양으로 가지런히 쌓인 구조이고, 리튬 이온은 판과 판 사이에 끼어 들어가 저장된다. 비유하면 칸이 정해진 책장이다. 칸 수가 정해져 있어 이론 저장용량은 g당 372mAh로 한계가 뚜렷하다.

FIG. 1세 음극 소재의 저장 방식(개념도)흑연10칸이 정해진 책장층 사이에 리튬 삽입372mAh/g(이론)리튬메탈20책장 없는 맨바닥리튬 금속을 직접 석출3,860mAh/g(이론)하드카본30구겨진 종이·스펀지넓은 층간·닫힌 기공약 300mAh/g(나트륨)두 대체재는 흑연을 없애는 방식이 다르다
Fig. 1. 흑연, 리튬메탈, 하드카본이 이온을 저장하는 방식의 차이를 비유와 비용량으로 정리한 개념도.
자료: Qian 등(Nature Communications, 2015), Tang 등(Nature Communications, 2023)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리튬메탈은 책장을 치우고 맨바닥에 리튬을 직접 쌓는 방식이다. 2015년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Qian 등의 논문은 리튬 금속의 이론 비용량을 3,860mAh/g, 전위를 표준수소전극 대비 −3.040V로 제시하며 ‘이상적인 음극’으로 평가한다. 흑연의 약 10.4배에 해당하는 값이다. 그러나 같은 논문은 덴드라이트(리튬이 나뭇가지처럼 자라는 수지상 결정) 성장과 낮은 쿨롱 효율(충전한 전하 대비 방전되는 전하의 비율)이 실용화를 막아 왔다고 지적한다. 맨바닥에 쌓다 보니 고르게 쌓이지 않고 뾰족하게 솟는 셈이며, 이 때문에 전고체 전해질이나 계면 공학과 함께 해법이 모색된다.

하드카본은 구겨진 종이 뭉치나 스펀지에 가깝다. 2023년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Tang 등의 논문은 하드카본을 방향이 제각각이고 휘어진, 결함 있는 그래핀 나노시트로 이뤄진 구조로 설명하며 층간 거리가 크다고 쓴다. 흑연은 나트륨-흑연 층간 화합물이 불안정해 나트륨 저장 용량이 제한되는 반면, 하드카본은 넓은 층간과 닫힌 기공(closed pore)에 나트륨을 담는다. 특히 닫힌 기공은 저전압 평탄 구간의 용량에 핵심 역할을 한다고 이 논문은 밝힌다. 같은 논문은 하드카본의 통상 비용량을 약 300mAh/g으로 소개한다.

비교: 용량, 과제, 그리고 준비 상태

구분 흑연 리튬메탈 하드카본
대상 전지 리튬이온 리튬금속·전고체 주로 나트륨이온
저장 방식 층간 삽입 금속 리튬 석출(호스트 없음) 넓은 층간·닫힌 기공 저장
비용량(mAh/g) 372(이론) 3,860(이론, 흑연의 약 10.4배) 약 300(나트륨 기준 통상치)
주요 과제 용량 한계, 공급망 집중 덴드라이트, 낮은 쿨롱 효율 나트륨이온 전용 소재, 양산 초기
적용 대상 범용 EV 프리미엄 EV 보급형 EV·ESS
Fig. 2. 흑연·리튬메탈·하드카본 음극의 저장 방식과 비용량 비교
자료: Qian 등, Nature Communications(2015); Tang 등, Nature Communications(2023); 흑연 이론용량은 원문 기재값

이 표가 말하는 것: 리튬메탈은 흑연보다 약 10배 많은 용량을 약속하지만 안전성 과제를 안고 있고, 하드카본은 용량이 흑연보다 낮은 대신 나트륨이라는 다른 화학으로 원료 부담을 줄이는 쪽이다. 두 소재는 같은 자리를 다투는 경쟁재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장을 겨냥한 병행 트랙이다.

하드카본 트랙의 국내 준비 상태는 애경케미칼 사례로 가늠할 수 있다. 보도를 종합하면 흐름은 다음과 같다.

시점 내용
2024년 바이오매스 기반 나트륨이온 배터리용 하드카본 음극재 개발
2025년 성능을 개선한 제품 공개
2025년 12월 고객사 대규모 파일럿 테스트 대응을 위해 전주 공장 생산라인 증설 결정, 국내 첫 나트륨이온 배터리 음극재 양산 설비로 보도
2026년 3월 전주 공장에 연 1,300톤 설비 구축 중, 향후 연 2만톤 목표, 고객사 파일럿 테스트 대응 단계
Fig. 3. 애경케미칼 하드카본 음극재 사업의 공개 일정
자료: 서울경제(2025-12-04), 머니투데이(2026-03-10) 보도

이 표가 말하는 것: 1,300톤에서 2만톤으로 가는 계획은 약 15배 확대이며, 2026년 3월 기준으로는 아직 고객 파일럿 단계에 있다.

여기서 원문에 없던 해석을 하나 덧붙인다. 중국의 2023년 수출통제 공고가 명시한 품목은 인조흑연 소재와 천연 인상흑연 제품이다.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하는 하드카본은 흑연이 아니므로 공고 문언상으로는 이 목록과 결이 다르다. 이 점에서 하드카본 트랙은 단순한 소재 교체가 아니라 ‘규제 대상 품목 밖으로 공급망을 옮기는’ 선택지로 읽힐 수 있다. 다만 실제 통관 분류(HS 코드) 기준의 해당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특허 관점: 소재 자체보다 ‘조합과 파라미터’에 권리가 걸린다

리튬메탈 덴드라이트 억제는 계면 공학(음극 표면의 보호층·고체전해질 계면층 설계) 관련 출원이 몰리는 영역이다. 전고체 배터리와의 결합 여부가 상용화 특허 전략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글에서는 리튬메탈 쪽 개별 특허의 서지를 대조하지 않았으므로 구체 번호는 제시하지 않는다.

하드카본 쪽에서 서지를 확인한 사례는 도요타(Toyota Motor Corp)의 미국 등록특허 US11735715B2(“Anode material for sodium ion battery, and sodium ion battery”)다. 우선일은 2019년 11월 7일, 출원일은 2020년 10월 21일, 등록일은 2023년 8월 22일이며, Google Patents 기준 법적 상태는 Active, 예상 만료일은 2041년 4월 29일이다.

청구항 1의 요지를 재서술하면, BET 비표면적이 32~1,050m²/g인 비정질 유리상 탄소와, NaCB₉H₁₀와 NaCB₁₁H₁₂를 포함하는 고용체인 나트륨 착수소화물 고체전해질(NaMH 화합물)을 40:60~70:30의 중량비로 함께 담은 음극재다. 명세서는 이 조합이 초기 충방전 효율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FIG. 4US11735715B2 청구항 1 구성요소 지도청구항 1 구성요소(재서술)회피 가능성·대응(a)비정질 유리상 탄소하드카본 공통 요소, 회피 어려움(b)BET 비표면적 32~1,050m²/g측정 조건 따라 범위 판단 달라짐(c)NaCB₉H₁₀·NaCB₁₁H₁₂ 고용체 고체전해질액체 전해질 셀은 해당 소지 낮음(d)탄소:고체전해질 중량비 40:60~70:30범위 밖 배합, 균등론 주의소재 단독이 아닌 조합에 권리가 걸린다
Fig. 4. 도요타 미국특허 US11735715B2 청구항 1을 구성요소별로 나누고 회피 가능성을 대응시킨 도식.
자료: US11735715B2 청구항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재구성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권리 구조의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탄소 소재 자체가 아니라 ‘비표면적 같은 물성 파라미터 + 특정 고체전해질 + 배합비’의 조합에 권리가 걸려 있다. 둘째, 그 결과 권리 범위는 좁고 명확해진다. 액체 전해질을 쓰는 일반적인 나트륨이온 셀의 하드카본 음극은 고체전해질 요소를 갖추지 않으므로 이 청구항의 문언 침해 소지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

회피설계 시나리오와 반론은 다음과 같다.

  • 회피 방안: 고체전해질을 NaMH 계열이 아닌 다른 계열로 바꾸거나, 탄소의 BET 비표면적 또는 배합비를 청구 범위 밖으로 설계하면 문언상 권리 범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 반론: 파라미터 청구항은 측정 방법에 따라 값이 달라질 수 있어, 자사 측정값이 범위 밖이라도 상대방 측정 조건에서는 범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균등론(구성요소가 실질적으로 같은 역할을 하면 침해로 보는 법리) 주장 가능성도 따로 따져야 한다.

하드카본 제조 공정 특허는 원료(바이오매스 대 석유계)에 따라 갈릴 여지가 있다. 애경케미칼이 공개한 하드카본 관련 특허는 공개된 특허 정보로는 이번에 확인되지 않았으며, 추적 포인트로 남긴다.

한계와 전망: 두 트랙은 속도가 다르다

애경케미칼의 1,300톤에서 2만톤으로의 증설 계획은 발표 단계로, 실제 가동률과 품질 안정화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리튬메탈 역시 덴드라이트와 쿨롱 효율 문제가 전고체 전해질 상용화 일정과 묶여 있어, 흑연을 실제로 대체하는 시점은 하드카본 트랙보다 늦을 가능성이 있다.

낙관 전망의 반대 시나리오는 흑연 쪽에서 나온다. 흑연 가격이 예상보다 안정되고 중국 외 지역의 흑연 공급원이 늘면, 흑연을 떠날 비용상 이유가 약해져 탈흑연 전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 특히 하드카본은 용량이 흑연보다 낮아, 원료 리스크라는 명분이 약해지면 채택 논리가 가격 하나로 좁혀진다.

전략적 대안은 ‘대체’가 아니라 ‘분산’으로 보는 것이다. 단기에는 흑연 공급처 다변화로 리스크를 줄이고, 보급형·ESS 라인업에서 나트륨이온·하드카본을 제2 공급망으로 검증해 두며, 리튬메탈은 전고체 로드맵과 묶어 장기 옵션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실무 액션: 소재·IP 담당자는 하드카본 공급 후보사의 제품 물성(BET 비표면적 등)과 측정 조건을 받아 두고, 이를 파라미터형 특허 청구항의 수치 범위와 대조하는 FTO 점검표를 먼저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확인이 필요한 항목

  • 흑연의 음극재 시장 점유율 90% 이상이라는 수치의 기준 연도와 출처
  • 바이오매스 기반 하드카본이 중국 흑연 수출통제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지 HS 코드 기준 확인
  • 애경케미칼 전주 공장 1,300톤 설비의 가동 개시 시점과 2만톤 증설 일정
  • 애경케미칼 하드카본 관련 국내외 특허 출원 현황
  • 리튬메탈 계면 보호층 분야의 주요 등록특허와 권리자

출처

  1. China SCIO, “China announces export control on certain graphite materials, products”, 2023-10-20
  2. IEA Policies, Announcement on the optimisation and adjustment of temporary export control measures for graphite items
  3. Qian et al., “High rate and stable cycling of lithium metal anode”, Nature Communications, 2015
  4. Tang et al., “Revealing the closed pore formation of waste wood-derived hard carbon for advanced sodium-ion battery”, Nature Communications, 2023
  5. 서울경제, “애경케미칼, 전주공장 하드카본 음극재 증설”, 2025-12-04
  6. 머니투데이, “애경케미칼, 이차전지 소재 사업 확대…신성장동력 확보”, 2026-03-10
  7. Google Patents, US11735715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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