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배터리 설계도를 다시 쓴다 —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가 겨냥한 피지컬 AI 시장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에서 삼성SDI는 자사의 전고체 배터리에 ‘솔리드스택(SolidStack)’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붙이고, 휴머노이드 로봇 등 피지컬 AI(물리적 실체를 가진 로봇·기계가 AI로 제어되는 응용 분야를 통칭하는 표현) 기기를 겨냥한 파우치형 샘플을 공개했다. 회사가 밝힌 전고체 관련 특허 보유량은 약 1,100건, 각형 배터리 미국 특허까지 합치면 1,200건을 넘는다.

① 무엇이 화제인가

업계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전고체 배터리는 지난 몇 년간 ‘전기차의 미래’로만 소비돼 왔고, 양산 시점은 2027년 전후로 계속 미뤄지는 인상을 줬다. 그런데 CATL과 BYD 역시 2027년 전고체 시범생산이라는 같은 시간표를 최근 재확인하면서(2026년 8월),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세 회사가 사실상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됐다. 이 지점에서 긴장 요인이 생긴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면, 먼저 시장을 여는 쪽이 유리하다 — 그런데 그 시장이 꼭 자동차일 필요는 없다. 로봇, 특히 순간적으로 큰 힘을 필요로 하는 휴머노이드는 완성차보다 훨씬 빨리 소량·고부가 시장을 열어줄 수 있다.

이 글이 답하려는 질문은 하나다. 삼성SDI는 왜 전고체 배터리의 첫 실물 응용처로 자동차 대신 로봇을 골랐고, 그 선택이 특허 전략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② 기본 원리

전고체 배터리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비유는 ‘액체 유통망을 고체 컨베이어벨트로 바꾼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는 리튬 이온을 실어 나른다. 액체는 어디로든 흐르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끓거나 분해되면서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 액체 유통망을 고체 상태의 전해질로 바꾼 것이다. 컨베이어벨트처럼 정해진 통로로만 이온이 움직이기 때문에 새어나가 불이 붙을 위험이 훨씬 적고, 통로 자체를 얇게 눌러 담을 수 있어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문제는 이 ‘고체 컨베이어벨트’를 실제로 잘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고체와 고체 사이의 접촉은 액체만큼 매끄럽지 않아서, 계면(고체와 고체가 맞닿는 경계면)에서 저항이 커지거나 충·방전을 반복할수록 틈이 벌어질 수 있다. 삼성SDI가 채택한 황화물계 전해질(황을 주성분으로 하는 고체 전해질)은 이 계면 문제를 비교적 잘 해결해 이온 전도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해 유해가스를 만들 수 있다는 약점도 함께 가진다.

로봇용 배터리가 자동차용과 다른 점은 여기서 갈린다. 전기차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 달리는가(에너지밀도)’가 핵심 지표지만, 걷고 뛰고 물건을 드는 로봇은 ‘순간적으로 얼마나 센 힘을 낼 수 있는가(출력밀도)’와 ‘몸체 안 좁은 공간에 얼마나 가볍게 들어가는가(경량·소형화)’가 더 중요하다. 파우치형(알루미늄 필름으로 감싼 납작한 형태) 전고체 배터리는 각형·원통형보다 형상 자유도가 높아 로봇 관절 주변의 좁은 공간에 맞춰 설계하기 유리하다는 점에서, 삼성SDI의 폼팩터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응용처에 맞춘 설계로 읽힌다.

③ 비교: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vs 황화물계 전고체

구분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양산 표준) 황화물계 전고체 (삼성SDI SolidStack 계열)
에너지밀도(부피 기준) 약 700Wh/L 내외 (파우치 기준 통상치) 최대 약 900Wh/L (공개 수치 기준)
이온전도도 액체 매질로 상온에서 높음 황화물계는 산화물계 대비 상온 전도도 우수
열 안전성 발화·열폭주 리스크 상존 고체 전해질로 발화 리스크 구조적으로 낮음
대기·수분 안정성 밀폐 파우치 내부라 이슈 적음 황화물계는 수분 반응성이 구조적 약점
형상 자유도 각형·원통형·파우치형 모두 성숙 파우치형이 우선 개발 중, 경량·소형화 유리
주요 응용 시나리오 EV, ESS, 소형 IT기기 로봇·휴머노이드, 항공우주, 웨어러블 (개발 단계)

이 표가 말하는 것: 부피당 에너지밀도에서 전고체가 기존 리튬이온을 웃돌면서도(최대 900Wh/L 수준) 발화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낮췄다는 점이, 로봇처럼 사람 곁에서 움직이는 기기에 특히 매력적인 조합으로 작용한다. 다만 황화물계 고유의 수분 반응성은 여전히 미해결 변수로 남아 있다.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vs 황화물계 전고체 에너지밀도 비교 차트

④ 특허 관점

삼성SDI의 전고체 관련 대표 특허 중 하나로 확인되는 것이 US11955601B2(황화물계 고체전해질 및 이를 포함하는 전고체 이차전지, 삼성SDI·세종대학교 산학협력단 공동출원, 우선권 주장일 2020-08-31, 등록일 2024-04-09)다. 이 특허의 권리 범위는 단순히 ‘황화물계 전해질’이라는 넓은 개념이 아니라, 아지로다이트형(정팔면체를 기본 단위로 하는 특정 결정구조) 전해질에서 X선 회절(XRD) 분석으로 측정한 특정 피크 강도비(2θ 29°와 30° 피크의 비율이 0.06 이하 등)를 만족하도록 불순물상을 억제한 조성물에 걸려 있다. 쉽게 말해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느 정도로 순도 높은 결정 구조를 어떻게 확인·통제했는가’라는 매우 구체적인 물성 지표에 권리가 걸려 있는 구조다.

이런 청구항 설계는 회피 방안(특허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기술적 효과를 얻으려는 대안 설계) 관점에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열어둔다. 첫째, 경쟁사가 동일한 아지로다이트 구조를 쓰더라도 XRD 피크비 조건을 벗어나는 합성 공정을 택하면 이 특허의 문언적 권리범위 밖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최근 공개된 POSCO JK솔리드솔루션의 KR20250018801A(대기 및 수분 안정성이 향상된 아지로다이트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처럼, 같은 상위 개념(아지로다이트 구조) 안에서도 ‘순도 통제’가 아니라 ‘수분 안정성 개선’이라는 다른 기술적 과제를 청구항의 축으로 삼으면 침해 소지를 낮추면서도 인접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다만 두 시나리오 모두 실제로는 클레임 차트(청구항 구성요소 대 대상제품의 대응관계표)를 통한 정밀 대조 없이는 침해 여부를 단정할 수 없으며, 삼성SDI가 후속으로 출원한 US12341154B2(등록일 2025-06-24, 삼성SDI 단독 소유) 등 관련 계열 특허와의 관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삼성SDI가 전고체 관련해서만 약 1,100건의 특허를 쌓아온 점은, 개별 특허 하나의 권리범위보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울타리 밀도’가 더 중요한 전략임을 시사한다. 후발주자가 하나의 청구항을 피해가더라도 인접한 다른 청구항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FTO(Freedom to Operate, 특정 기술을 자유롭게 실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침해 여부 분석) 검토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⑤ 한계 및 전망

낙관적으로 보면 로봇용 전고체 배터리는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게 상업화될 가능성이 있다. 로봇은 자동차만큼 엄격한 충돌 안전 규제와 대규모 양산 검증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소량·고부가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자체가 아직 대량 상용화 이전 단계이며, 로봇 제조사들이 배터리보다 액추에이터·제어 소프트웨어의 성숙도를 우선순위로 두면서 배터리 교체 주기가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삼성SDI를 비롯한 셀메이커들의 초기 물량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전략적 대안으로는, 로봇 시장의 성숙 속도가 불확실한 만큼 항공우주·의료기기 등 ‘고부가·소량’이라는 동일한 시장 특성을 가진 인접 응용처로 특허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확장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삼성SDI가 항공우주·차세대 웨어러블까지 응용처를 넓히겠다고 밝힌 점도 이런 리스크 분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획·IP 담당자를 위한 액션 아이템: 자사가 로봇·항공우주 등 신규 응용처向 배터리 공급을 검토 중이라면, 채택하려는 황화물계 전해질의 조성·결정구조가 삼성SDI의 US11955601B2 및 관련 계열 특허의 청구항 구성요소(특히 XRD 피크강도비 조건)와 겹치는지 자체 클레임 차트를 만들어 1차 스크리닝해볼 것을 권한다. 이는 확정적 결론이 아니라 별도 검토가 필요한 출발점으로만 활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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