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전해질 배터리, 특허보다 표준이 앞선다 — 중국 주도 IEC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26년 8월 21일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제안한 전고체 배터리 국제표준 프로젝트가 정식 채택됐습니다. 세계 최초의 전고체 배터리 국제표준이며, 프랑스·일본·한국 전문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표준 자체는 기술 우열을 가리는 문서가 아니지만, 표준 문서 안에 특정 기업의 특허가 ‘표준필수특허(SEP)’로 얽혀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표준을 설계한 쪽이 시험 방법과 평가 항목의 기준선을 정하고, 그 기준선에 맞춰 후발주자들이 기술을 재설계해야 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업계는 그동안 전고체 배터리를 ‘누가 먼저, 몇 년에 양산하는가’의 경쟁으로만 읽어 왔습니다. CATL과 BYD는 2027년 소량 시범생산을, 국내 3사는 2027~2029년 양산을 목표로 제시해 온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 IEC 프로젝트 승인은 ‘누가 먼저 만드는가’가 아니라 ‘누가 만드는 방식을 정의하는가’라는, 결이 다른 질문을 업계에 던졌습니다. 시험 항목과 평가 조건을 먼저 문서화한 쪽이 이후 인증·수출·조달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표준화가 특허 전략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국내 기업과 IP 담당자가 지금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전고체 배터리 국제표준과 특허 전략 개념 이미지

① 무엇이 화제인가

SAMR은 8월 21일 “전기차 구동용 이차 리튬이온전지―전고체 배터리를 위한 지침, 시험 항목 및 조건(Secondary Lithium-ion Batteries for Electric Vehicle Propulsion—Guidelines, Test Items, and Conditions for Solid-state Batteries)”이라는 명칭의 국제표준 프로젝트가 IEC에서 정식 개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의 국제표준 프로젝트로 소개되고 있으며, 중국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프랑스·일본·한국 등의 전문가가 표준 개발에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같은 시기 배터리 셀 진영의 움직임도 분주했습니다. BYD는 8월 7일 할로겐화물계와 황화물계 전해질을 결합한 ‘이중 전해질’ 구조를 중심으로 신규 특허 6건을 공개하며 2027년 소량 시범생산 계획을 재확인했습니다. CATL 역시 7월 말 상반기 실적발표에서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소량 생산 목표를 재차 못박았습니다. 표준화 논의와 셀 양산 로드맵이 같은 달 안에 겹쳐서 나온 셈이며, 이 두 흐름을 따로 읽기보다 하나로 겹쳐 읽어야 그림이 완성됩니다.

② 기본 원리

국제표준과 특허는 언뜻 상관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주 얽힙니다. 비유하자면 표준은 ‘시험 문제지’이고 특허는 ‘풀이 공식’입니다. 문제지를 먼저 설계한 사람이 특정 풀이 공식을 써야만 답이 깔끔하게 나오도록 문제를 낸다면, 그 공식을 보유한 사람(특허권자)은 시험을 치르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런 특허를 표준필수특허, 흔히 SEP(Standard Essential Patent)라고 부릅니다.

이번에 승인된 프로젝트는 ‘지침·시험 항목·시험 조건’을 정하는 문서, 즉 시험 방법론에 관한 표준입니다. 전지의 화학 조성 자체를 강제하는 표준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시험 조건(예: 특정 온도·압력·사이클 조건에서의 평가 항목)이 특정 셀 구조나 계면 처리 기술에 유리하게 설계될 경우, 그 조건에 최적화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인증·수출 국면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간접적 이점을 가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표준 제정 과정에 한국 전문가도 참여하는 만큼, 시험 조건이 특정 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내 업계의 실질적인 관심사가 됩니다.

③ 비교

주요 진영의 전고체 배터리 로드맵과 특허 활동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에너지밀도 수치는 각 사가 공개한 목표치이며, 실제 양산 셀 성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참고용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기업/진영 전해질 방식 목표 에너지밀도 양산·시범생산 목표 연도 최근 특허·표준 활동
CATL(중국) 황화물계 약 500Wh/kg(공개 목표치) 2027년 소량 시범생산 양극 코팅 관련 특허(WO2026045268A1) 등 2022년 이후 42건 이상 특허 패밀리 공개
BYD(중국) 할로겐화물+황화물 이중 전해질 비공개 2027년 소량 시범생산 2026년 8월 신규 특허 6건 공개(계면 접촉 안정화 중심)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한국) 황화물계(듀얼트랙 병행) 비공개 2027~2029년 양산 최근 3년 전고체 분야 특허출원 연평균 증가율 세계 1·2위(각 51.7%, 50.8%)
토요타(일본) 황화물계 비공개 2026년 전고체 구동 차량 양산 돌입 발표 계면 코팅 관련 특허 다수 보유(양극 코팅 분야 삼성SDI와 함께 선두권으로 분류)

이 표가 말하는 것: 중국 진영은 ‘시범생산 시점’을 2027년으로 먼저 못박고 표준화까지 주도권을 쥐려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고, 한국 진영은 시범생산 시점에서는 다소 뒤처져 보이지만 특허출원 증가율에서는 세계 1·2위를 차지하며 기술 방어선을 촘촘히 쌓고 있습니다. 속도와 밀도, 두 축에서 서로 다른 전략이 부딪히고 있는 구도입니다.

④ 특허 관점

표준화 프로젝트 자체는 아직 시험 방법론 단계이므로, 이 시점에 특정 SEP가 확정됐다고 보기는 이릅니다. 다만 IP 담당자 입장에서 짚어야 할 권리 범위 이슈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CATL이 2026년 3월 공개한 WO2026045268A1(양극 활물질 표면에 불소계 리튬염을 코팅해 황화물 전해질과의 고온 부반응을 억제하는 기술, 출원인 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td, 우선권일 2024년 8월 30일)과 같은 계면 안정화 특허가 향후 시험 조건 설계에 참조 기술로 인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표준 문서의 참고문헌 목록에 특정 기업의 특허가 오르는 순간, 그 표준을 따르려는 후발주자는 사실상 해당 특허의 권리 범위를 피해가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회피설계 시나리오(반론): 다만 이런 우려에는 반론도 성립합니다. 첫째, IEC 표준 채택 절차는 통상 수년이 걸리는 데다, 시험 방법론 표준은 성능 목표치가 아니라 ‘어떻게 측정할지’를 정하는 절차 규범에 가까워 특정 화학 조성이나 소재 조합을 강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설령 특정 계면 처리 기술이 참조된다 해도, 청구항의 구체적 구성요소(예: 코팅 위치가 양극인지 음극인지, 코팅 물질이 불소계 리튬염인지 다른 화합물인지)가 다르면 비침해 설계가 가능한 여지가 남습니다. 예컨대 CATL 특허가 양극 표면 코팅에 초점을 맞춘 반면, 리비안이 보유한 미국 특허 US12424625B2(고체전해질과 음극 사이 계면층에 리튬 금속 황화물을 적용하는 기술, 2025년 9월 등록, 2043년 만료)는 음극 쪽 계면을 다루고 있어 청구항이 겹치지 않습니다. 이처럼 전극의 어느 쪽에 어떤 물질로 계면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권리 범위가 갈리는 구조이므로, 표준을 따르되 특정 기업의 청구항 구성요소를 정확히 피해 설계하는 접근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⑤ 한계 및 전망

중국이 표준화 주도권을 쥐면 글로벌 인증·조달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중국 입장에서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러나 반대 시나리오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IEC 표준은 다국적 전문가 합의로 완성되는 절차이며, 한국·일본·프랑스 전문가가 시험 조건 설계에 관여하는 이상 특정 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준 제정 과정 자체가 각국 기업들에게 상대 진영의 기술 로드맵과 특허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식 창구로 작동해, 결과적으로 기술 격차보다 특허 포트폴리오의 두께가 협상력을 좌우하는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략적 대안으로는, 표준 제정 과정에 참여하는 국내 전문가 채널을 통해 시험 조건 설계 단계에서부터 국내 기업의 계면 처리·코팅 특허가 인용 후보로 오를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특허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특허출원 증가율에서 이미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양적 우위를 표준화 협상력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다음 단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 액션: 기획·IP 담당자라면 이번 IEC 프로젝트의 국내 대응 위원회(국가기술표준원 또는 관련 학회 산하) 참여 명단과 회의 일정을 확인하고, 자사의 계면 코팅·전해질 관련 특허 중 표준 시험 조건에 참조될 가능성이 있는 건을 별도로 리스트업해 두는 작업을 이번 분기 안에 시작하는 것을 권합니다.

본 콘텐츠는 공개된 보도자료와 특허 공보를 기반으로 한 해석이며, 표준 채택 및 특허 등록·소송 관련 전망은 어디까지나 가능성 차원의 분석입니다. 개별 사안은 별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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